블로거로서 법정스님 ‘말빚’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까닭

2010. 3. 26. 06:00잡담...그 속의 진심

얼마 전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이 무명천에 뿌려진 붉은 물감처럼 마음에 젖습니다.


이미 자신의 큰 깨달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한 말씀을 나누어 주셨던 스님.
그 분이 가시는 길에 마지막 남기신,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말씀에 자꾸 마음이 멈추어, 요 며칠 도통 글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법정스님의 말씀 by 정호씨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왜 생전에 적어 나누어 주신 소중한 글들을 ‘말빚’이라 낮추며, 더 이상 나누지 말라, 하고 떠나셨을까요. 


부족하디 부족한 짧은 식견으로 미루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6개월 전 써놓은 블로그의 글들이 부끄러워 지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비단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해에는 오늘 쓴 글을 부끄러워 말아야지, 다짐하며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사실 그 마음 이면엔 내년엔 틀림없이 나아질 거라는 부질없는 자신감이 숨어 있습니다. 모르는 놈이 용기 있다고, 저 또한 철없는 자신감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스님이 남기신 말씀을 접하고 나니, 선생님께 혼난 뒤 풀 죽어있는 아이처럼 어깻죽지에 힘이 빠지고, 고개가 숙여져 다음 할 일을 잃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정진해도 예전에 써놓은 글들이 ‘빚’으로 느껴지는 거라면, 매일매일 철없이 적는 몇 자는 무슨 의미일까요.




조심스레 법정스님의 유언 전문을 제 블로그에 바로 새겨봅니다.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해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 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 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 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