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진료, 대책은 없다.

2014. 11. 15. 07:49잡담...그 속의 진심/의사가 본 병원이야기


요즘 나의 진료 예약 스케쥴은 환자 한 명당 5분 간격이다.

오전, 오후 진료 한 타임이 4시간이니까, 5분 간격으로 화장실로 다녀오지 않고 환자를 본다면 4시간에 48명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 말이 5분이지, 초진 환자의 경우 죽었다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깨어나도 5분 안에 진료를 마치기가 어려운 점을 생각하면, 재진 환자는 더 짧게 봐야 하는 시스템이다. 대학교수인 내가 신작 영화 '카트'의 감독 인터뷰에서 화장실 갈 틈이 없어 방광염에 걸리는 마트 직원 이야기를 들으며 동료애를 느꼈다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증상이 복잡한 환자를 진찰하느라, 진료가 20분 가까이 길어지면, 어느새 밖에는 3명 이상의 환자가 대기한다. 마지막 환자가 왜 자신의 진료가 15분 넘게 늦어지느냐며 간호사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면, 내 방광 좀 비우자고 환자와 간호사 사이를 지나 화장실을 다녀올 엄두를 내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요즘에는 진료실에 오강(예전엔 소변통을 이렇게 불렀다.)이라도 갔다 놓아야 하나 싶을까.


일반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의사들이 돈 욕심이 많아 제대로 긴 시간을 진료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교수인 나는 환자를 적게 보든, 많이 보든 크게 월급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보는 건, 병원의 수익 구조가 이렇게라도 열심히 보지 않으면 적자를 면하기 어려워서다. 실제로 최근 많은 대학병원이 교수 연봉을 동결하거나 삭감을 계획하고 있다. 선택진료비 축소에 따른 수익 감소가 대학병원의 숨통을 조르기 시작하면서 궁여지책으로 인건비를 줄이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의료비가 얼마나 비싼데, 적자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싶겠지만, 문제는 의료 원가가 상상을 초월하게 높기 때문이다. 집에서 쓰는 가위는 아무리 비싸도 몇만 원이지만, 가위 앞에 '의료용'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가격이 수십만 원으로 껑충 올라간다. '수술용' 가위는 이보다도 더 비싸서, 100만 원 밑으로 살 수 있는 가위는 품질을 믿을 수 없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 정도다. 이비인후과의 경우 환자가 앉는 진료용 의자(높낮이와 방향이 전동으로 작동하는) 가격은 보통 3,000만 원이 넘는다. 콧물을 빨아주는 기계와 스프레이가 달려 있는 기구 본체는 이 가격에서 당연히 예외다. 내시경 장비는 아무리 싸게 들여놔도 7~8,000만 원은 든다. 비경(코를 들여다볼 때 쓰는 작은 기구)도 개당 가격이 수십만 원이다. 귀지를 제거할 때 쓰는 작은 집게는 개당 150만 원 정도 한다. 


병원이 진료로 발생하는 적자를 주차장과 장례식장 운영으로 메꾸며 버틴다는 사실은 정부도 알고, 시민단체도 알고, 언론도 안다. 단지, 환자들만 이해하지 못한다. '에이, 설마~'하는 거다. 그 설마가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현주소다. 나는 의료수가가 올라가는 일은 앞으로도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조금씩이야 오르겠지만, 물가 연동 폭보다 더 크게 올라서 의료수가가 현실화되는 일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진료비를 올리려면 정치인들이 나서줘야 하는데, 어떤 미친 국회의원이 진료비를 올리는 민감한 사항에 사활을 걸겠느냐 말이다. 정부도 믿을 수 없다. 국가가 바닥나서 경범죄 범칙금까지 올리는 마당에 의료 복지에 쓸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환자들이 내는 의료비는 지금 수준이 사회적 합의 수준에서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본받고 싶어하는 의료복지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하지 않던가. 대신 의사가 환자 등쳐먹는 파렴치한이라는 이미지는 이제 제발 벗었으면 좋겠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의사와 환자가 서로 깊이 신뢰하고 합심해야 그나마 가능하다.


추) 오죽하면 의사들이 TV에 나와서 영양제나 팔고 있겠나. 넉넉하면 재벌 총수들처럼 집에서 편한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채널이나 돌리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