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4. 06:00ㆍ잡담...그 속의 진심/의사가 본 병원이야기
이번 주말 심야토론 혹시 보신 분들 계신가요?
내 생각에는 본방 시청자 중 7할은 의사라는 데 한 표.
왜냐? 정작 비의료인들은 의료 정책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 와중에 신현호 변호사의 한 마디가 페친 의사들 사이에서 화제.
그의 한수
"의사는 공공재다. 나라에서 대준 돈으로 공부해서 의사 된 거 아니냐. 그러니 의사도, 병의원도 공공재다.”
앞에 앉아 있던 윤용선 대한의원협회회장
"저는 정부에서 돈 한 푼 받은 적 없는데요?! 제 돈으로 의대 다니고, 제 돈으로 병원 차렸는데, 무슨 이야깁니까!”
변호사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당연히, 페북 의사들 사이에선 걸쭉한 입담이 이어지고.
"그럼,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한 너는 공공재 아니냐!!’
그래도 사시 패쑤한 당신이라면, 공공재 이야기는 실수했다 싶지 않을까.
그런데 불현듯 스친 생각.
설마...
신 변호사 이 양반, 지능적 안티??....
(공공재 이야기에 발끈한 의사를 보며, 3할의 일반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공공재 이야기 자체는 워낙 기가 차니, 논의할 계제도 아닌 것 같아 패쓰~
하지만, 내 돈 내고 의대 다녔고, 내 이름으로 대출받아 병원 차렸으니, 병원은 사유 재산이라며, 공공의 성격을 전면 부인한 것 또한 실수라는 생각.
반감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측면도 있지만,
윤리의식을 가져야 하는 상위 계층 직업군에 의사가 속해 있다면, 그에 따른 공공적 책무도 있는 건 사실이니까.
Noblesse obliqe.’
우리 모두가 대기업을 욕하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니던가 말이야. 자기네 돈 굴려 부자 되었는데, 상속세는 왜 내어야 하느냐며 편법상속이나 일삼는 재벌가는 욕을 먹어 마땅하잖아. 재벌이 자기네 노력만으로 된 거냔 말이지. 정부가 돕고 국민이 거들어 그 자리까지 갔으면 사회에 보탬에 될 궁리도 하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우리나라 재벌들은 그게 없거든.
그런데 어제와 오늘의 의사들 반응은 일반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대기업의 냄새가 묻어난다 이거지. 사실, 우리가 정부에게 빼앗겼으면 빼앗겼지, 도움받은 건 쥐뿔도 없는 게 사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사회로부터 받은 게 없는 건 아니잖아. 우리가 면허를 받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사회라는 매트릭스를 허락받은 거니까.
상황을 약간 비틀어보면, 이해가 쉬어.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내 돈 들여 의대를 다녀서 의사가 되었는데, 나라가 사라졌다고 쳐. 그럼 어디에 병원을 차릴 거야? 그때는 돈이 있어도 병원을 차릴 수가 없잖아. 그러면,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병원을 차릴 수 있을까? 공짜로는 안 되지. 왜?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니까. 그 나라 사람들의 사회를 무료로 공유할 수 없는 거야.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당연히 부여받는 것들이 사실은 가장 비싼 재화라니까. 그래서 버는 돈 일부를 세금이라는 형태로 돌려내는 거고. 탈세하면 안 되는 거고. 탈세하면 잡아가야 하는 거고.
그런데 나도 독자들이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게 있어. 재벌은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돈 벌고 나니까 입 닦으려 하는 거지만, 의사들은 조금 다르다 이 말이야. 정부 도움으로 큰돈을 벌던 시절도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거든. 줄도산이 의료계의 현실이야. 돈 번 의사와 요즘 일하는 의사들은 세대가 달라. 요즘 세대 의사들은 정부로부터 핍박만 받고, 지원은 거의 받아보지 못했어. 그런데 말만 나오면, 돈 잘 벌면서 더 벌려고 정부 의료정책에 반대한다는 프레임으로 공격받거든. 이런 이야기 들으면 의사들 심정이 어떤지 알아? 운전하다가 자해공갈단을 만나서 스치지도 않았는데, 몇백 만 원 물어내랄 때 드는 심정이야.
포괄수가제? 다 관두라 그래. 그걸 왜 하겠어. 결국은 정부가 말아먹은 의료 재정 살릴 궁리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포괄수가제가 시작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장담하는데 포괄수가제로 치료받는 병에 걸린 사람 중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국외로 나갈걸. 본인 돈으로 더 좋은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으니, 어쩔 수 있어?! 당장 입원을 좀 더 하고 싶다는 환자와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다는 의사가 매일 힘든 씨름을 할 거고. 정부 사람들은 그때쯤 이미 홀가분한 마음으로 에어컨 빵빵 터지는 식당에서 시원한 냉면이나 먹고 있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일요일 새벽 성나고 답답한 마음에 써본 글임.
'잡담...그 속의 진심 > 의사가 본 병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분 진료, 대책은 없다. (1) | 2014.11.15 |
---|---|
소신진료가 불법진료 되는 의료 현장 (32) | 2010.04.28 |
비싼 병원, 싼 병원 도대체 그 차이는? (67) | 2010.02.17 |
이비인후과약 독하다는데, 그 진실은?? (74) | 2009.12.18 |
진료실에서 만난 감기약에 항생제 꼭 넣어달라는 환자 (161) | 2009.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