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6. 15:05ㆍ잡담...그 속의 진심/의사가 본 병원이야기
요즘 의사하기 참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에서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괜히 바른 소리 해봐야 인생에 득 되는 게 없다.
나는 사실 바른 소리 안하고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욕하는 법을 잘 안다.
문제는 뱉어야 할 욕을 곱씹다보니, 내 정신 건강이 위태롭다는 거다.
'의사'라는 직업이 여전히 대입과정에서 인기과로 대접받는 건 누가 뭐래도 남 등쳐먹지 않고
밥벌이 할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일 거다.
요즘, 의사들 수입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다들 아는 사실이 테고,
(얼마 전 모 대학 사회학과 교수님이 중앙일보 사설란에 기고한 '의사의 프롤레타리아화'라는 글을 읽고,
서글픈 마음에 나 진짜로 눈물이 흘렀다.)
13년(일반대학 4년,의학대학원 4년,인턴 1년, 레지던트4년)을 배워서 받는 월급으로만 따진다면,
이 일 말고도 해볼 만한 일은 숱하게 많다.
나 또한, 그래도 뭔가 보람된 일을 찾아 이곳으로 흘러들어 왔다.
물론, 내 머릿속에 훈훈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환자분들도 참 많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렇지 못한 환자들이 늘어간다는 거다.
대표적인 경우가 보험과 관련된 경우다.
사보험 잔뜩 가입되어 있는 환자들.. 이중엔 정말 가끔(?) 사회를 좀 먹는 인간들이 끼어있다.
이들은 대개 첫 외래 방문 시에 의사의 동정심을 유발할 줄 아는 주도면밀함을 보인다.
또한, 입원이라도 시켜줄랴 치면, 병동에서 의사선생 칭찬에 입이 마른다.
순식간에 평범한 의사에서 '명의'로 급부상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며칠이 경과하고 검사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전화사기 당하고 며칠 뒤 눈치 채듯, 의사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짐작하게 된다.
검사결과가 환자가 말한 증상들과 동떨어져 괜찮게 나오는 거다.
의사의 일차 진단은 환자의 병력조사(환자왈: 여기가 너무 아파요..)에 기반을 둔다.
만약 이학적 검사(만져보고 들어보고)가 괜찮아 보인다 하더라도
정밀검사 결과가 나오기 까지는 환자말을 신뢰해야 한다.
(만약 진찰소견이 괜찮다고 정밀검사 없이 돌려보냈다가 나중에 다른 진단이라도 나오게 되면,
그야말로 의사 돛박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일들은 피할 수 없는 악재다.
이제 의사에게는 이 환자를 퇴원시켜야 하는 숙제가 남겨진다.
이쯤해서 '그 환자 하루에만도 받는 보험금이 OO만원이래~'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퇴원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환자는 안면 몰수하고 돌변한다.
이쯤 되면 거의 정해진 수순을 밟게 된다.
환자는 병동마다 돌아다니며, 여전히 아파 죽겠는데 자신을 내쫓는다며 의사를 파렴치한으로 내몬다.
'명의'에서 이번엔 '돌팔이'로 순간 급강하하는 거다.
의사는 이렇게 롤러코스트를 타고 위-아래를 오가면서도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어쨌거나, 이런 환자가 의료 재정을 좀 먹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결국 퇴원하게 된 환자는 병원 게시판이든 시청민원실이든 설레발을 치고 다닌다.
그럼 조사한답시고,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빗발친다.
의사에겐 의료재정을 낭비하지 않고 소신 진료했다는 자부심은 남았을 지언정,
상처뿐인 승리다.
이들 때문에 의료실비보험이 문을 닫고,
진정 실비보험 수혜가 필요한 환자분들이 개고생하게 되는 거다.
오죽 이런 일들이 전국에서 비일비재 했으면, 보험회사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까.
퇴원시키려는 의사와 계속 입원하려는 환자
21세기 대한민국 의료정책이 낳은 천태만상이다.
임상경험이 한해씩 늘어갈수록 이런 환자와의 쓰디쓴 기억도 늘어가고,
가슴 따뜻한 의사를 꿈꾸며 살아왔던 하루하루는 퇴색되어간다.
환자들이 가끔은 정말 무섭다.
우리 제발 이러고 살지는 말자.
이건 정말 아니다.
집필후기..
이렇게라도 내 안의 욕을 사정하고 나니, 오르가슴 뒤의 노곤함이 몰려온다.
끝으로 이 한마디만 더 내뱉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나는 절대 내 자식은 의사 안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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