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들

2011. 9. 19. 06:00온 국민 건강프로젝트/깜신의 컨슈머리포트


추석 연휴이다 뭐다 해서, 포스팅이 좀 뜸했네요. ^^ 방만한 주인장을 탓할 만도 한데, 그래도 아무 소리 안 하고 꾸준히 다녀가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오늘은 과학동아 8월 호에 실렸던 제 글을 소개합니다. (책에는 예쁜 디자인으로 실렸는데, 유료 콘텐츠다 보니 텍스트만 소개하는 점 양해해 주세요.ㅠㅠ )
과학동아 독자님 중에 저와 코드가 맞는 분이 많았던 모양인지 독자 인기투표에서 제 글이 2등을 했답니다. 한가위 대명절에 받은 정관장 선물세트보다도 더 기분 좋은 일이었다죠. 항상 제 글에 관심 가져주시는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꾸벅 _ _;;




오늘 배달온 따끈한~ 선물! by
Meryl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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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공부할 때 우리는 언제나 답이 하나일 거라 생각하며, 그 답이 또한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과학이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천동설이 과학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듯이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이 물리적 현상에 대한 인류의 고찰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가능하다. 현상에 대한 관찰의 폭이 넓어지고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더 큰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의학 또한, 인체를 소재로 한 과학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역사를 가진다. 질병의 치료를 위해 무조건 피를 뺐던 때도 있다. 사혈요법이라고 불리는 이 치료는 체액의 불균형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에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최신 의술이었다. 질병의 병리에 대한 의학적 견해가 진보하여 20세기에 이르기 직전까지도 말이다. 최근 들어 비타민에 대한 의학계의 인식이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101년 전 처음 발견되어 최고의 영양소로 추앙받았던 비타민의 주가가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비타민의 흥망성쇠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걸까. 흥미진진한 비타민의 역사를 통해 건강기능식품의 오늘과 내일을 전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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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양소의 등장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그리고 지방 이외에 건강에 필수적인 다른 영양소가 존재할 것이라는 과학적 의심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 시작됐다. 이집트인들이 남긴 문서를 보면 야맹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동물의 간을 먹어야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질병을 비타민 보충으로 치료한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사례라 할 수 있다. 

1749년,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 제임스 린드는 비타민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는 레몬이나 라임 같은 감귤류의 과일이 괴혈병을 치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괴혈병은 인체의 결합조직을 구성하는 콜라겐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 생기는 질병이다. 그로 말미암아 잇몸출혈과 장출혈이 발생하고, 온몸이 아프고, 상처가 늦게 낫는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비타민의 정확한 존재를 잘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발견이 이어졌다. 1884년 일본의 의사 타카키 가네히로는 도정한 백미만을 주식으로 먹는 계층에서 각기병이 자주 발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일본 해군을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해 백미와 각기병 사이의 연관성을 밝혔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발견이 이어졌지만 비타민과 관련됐다는 점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910년 드디어 일본의 과학자 우메타로 스즈키가 비타민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는 쌀겨에서 비타민 B1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 1940년까지 12종의 비타민이 더 알려지면서, 인류 의학사에서 큰 획을 그은 비타민이 윤곽을 드러냈다. 비타민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비타민의 승승장구

비타민은 인류 건강에 곧바로 도움을 줬다. 그동안 원인을 몰라 치료할 수 없었던 여러 비타민 결핍에 의한 질병이 단숨에 해결됐다. 기적 같은 일이었고, 비타민을 발견한 학자들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모두 3개의 노벨상이 비타민C, K, A를 발견하고 효능을 밝힌 사람에게 수여됐다. 당시 수없이 많은 학자가 또 다른 비타민의 존재를 찾기 위해 밤을 지새웠고, 일부에서는 비타민의 효능을 밝히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수없이이 많은 비타민 관련 논문이 세상에 쏟아졌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질병 예방을 위한 비타민 복용이 권고되고, 제약회사는 정제하거나 합성해 만든 알약 형태의 비타민제를 생산했다. 치료를 위한 약 복용에서 질병 예방을 위한 약 복용으로 인식 전환이 시작된 때도 이쯤이다. 가정의 식탁 모서리에 드디어 알약 형태의 비타민제가 얼굴을 내민 것이다. 

개별 비타민이 복용하기 쉬운 제형으로 생산되자, 비타민 각각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는 임상 연구에 대한 규정이 지금처럼 엄격하지도 않았고, 비타민은 워낙 안전하고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돼 있어 연구는 순풍을 탄 배처럼 진행됐다.

그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은 비타민을 많이 먹었을 때 효과가 더 있냐는 점이었다. 부족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중요한 영양소라면 넉넉히 복용하는 게 건강에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비타민의 과량 복용에 따른 여러 효능이 소개됐다. 비타민 A, C, E의 암 예방 효과와 비타민B의 기력 증진, 비타민C의 감기 예방 효과, 비타민D의 심장병 예방, 비타민 E의 노화 예방 및 면역력 증대 효과들이 그때 쏟아져 나온 비타민 예찬론들이다. 가히 명실상부 비타민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다.



비타민의 쇠퇴

하지만 과학적 효과가 입증됐던 비타민의 현주소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빛나던 비타민의 위상이 뒤집히는 모습이 조금은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은 깊이 들어갈수록 ‘1+1=2’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빛이 파동이며 입자이듯 말이다. 특히 의학은 인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연구하기 때문에 자주 결과가 바뀐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물리 공간(in vitro)이 아닌 체내 환경(in vivo)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특정 효능이 입증되면서 각광받던 몇몇 약이 오랜 시간 투약하면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발견돼 제약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타민은 퇴출 위기에까지 몰린 것은 아니지만, 최근 연구 결과가 한없이 곤두박질치고 있고 있다. 

 


비타민A

Broccolli doesn't grow on trees, you know
Broccolli doesn't grow on trees, you know by Darwin Bell 저작자 표시


베타카로틴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진 비타민A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초기 연구에서 각종 암의 위험을 낮춘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아직껏 완벽한 치료방법을 찾지 못한 암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은 언제나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장기간 임상 결과에 따르면 어떤 암에 대한 예방 효과도 의미 있지 않다고 결론이 났다. 더욱이 비타민A의 과다 복용은 흡연자에게 있어서는 폐암의 위험을 높이고, 임신부에게 있어서는 기형아 출산의 위험을 높이며, 일부에서는 뼈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뒤따른다. 비타민 A는 우유나 달걀에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현대인들에게 더는 결핍되어 야맹증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은 영양소다. 당연히 학계에서는 비타민A의 복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비타민B 그룹(비타민 B는 B1, B2, B3, B5, B6, B7, B9, B12 등 서로 다른 형태가 8개 존재한다.)

 
Pure Milk
Pure Milk by luvi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다.’라고 광고하는 비타민드링크제의 근거가 되는 영양소가 바로 비타민B1이다. 비타민B1의 영양소가 결핍되면, 사람은 무력감과 만성 피로, 권태 등의 증상을 경험한다. 따라서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피로감이라면 비타민B의 복용으로 극적인 증상 개선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비타민B는 물에 녹아 과다 복용해도 소변으로 쉽게 배출돼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어찌 제약회사가 탐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비타민이 결핍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비타민B를 더 먹어도 기력이 나아지는 효과가 없다고 판명 났다. 또, 2010년 10월 발표된, 3만 7000명을 대상으로 했던 임상 연구 결과에서는 비타민B의 추가적 복용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거나, 심근경색, 암, 영유아 사망 등의 위험을 낮추지도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 남아 있기는 하다. 임신부에게 있어 비타민B9(엽산)의 복용은 여전히 기형아 출산의 위험을 낮춘다고 알려져 있어 복용을 권장한다. 또, 50세 이상 노령 인구의 30%에서는 비타민 B12의 위내 흡수율이 떨어져 빈혈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갱년기 이후의 비타민B12 복용 또한 권장하는 추세다.



비타민C

Big Splash
Big Splash by AHME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비타민이 바로 비타민 C가 아닐까. 이 비타민 또한, 비타민B 그룹과 함께 수용성 비타민이다. 이 때문에 고용량 비타민C 용법이 일찌감치 소개되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국내에서도 모 의과대학 교수가 한때 매스컴에서 ‘메가도즈(Mega dose) 비타민C 용법’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면서 전국의 약국과 가정을 1,000mg짜리 고용량 비타민C 제품으로 도배한 적이 있다. 물론, 최근에도 포털 검색창에 관련 단어를 검색해보면, 체험수기와 기적 같은 효능에 대한 글들이 다수 검색된다. 그만큼 비타민C는 암뿐만 아니라 기타 여러 질병의 예방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컸던 영양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어떤 질병에 대한 예방 효과도 통계적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 나고 있다. 한때 감기 예방을 위해 병원에서 의사가 비타민 복용을 권장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기껏해야 흡연자와 노인에게 있어 감기 증상을 조금 더 개선해주는 효과 정도만 인정하는 분위기다. 무조건 안전하다고만 알려졌지만 비타민C는 철분 흡수를 돕기 때문에 혈색소증이 있는 환자에서는 오히려 병의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비타민D

pacific morning
pacific morning by paul (dex) 저작자 표시


결핍되면 구루병과 골연화증의 원인이 되는 비타민D는 다른 비타민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다른 비타민들이 체내에서 전혀 합성되지 않아 무조건 외부 섭취로 충당해야 하는 것에 비해 비타민D는 햇볕만 있으면 체내(피부)에서 합성이 되는 유일한 비타민이다. 그래서 햇볕이 받지 못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따로 복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최근 한 대규모 역학 조사에서 비타민 D를 평소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이 암과 심장병의 유병률이 낮더라는 관찰 결과가 보고되면서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기는 하다. 물론, 관찰 연구의 특성상 비타민 D의 복용과 질병의 유병률에 대한 상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아니므로, 이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비타민E

Eid Mubarak - عید فطر مبارک
Eid Mubarak - عید فطر مبارک by Hamed Saber 저작자 표시
 

비타민 E는 항산화 효과로 가장 유명한 비타민이다. 토코페롤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종합비타민제를 광고하면서 면역력 증진을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는 영양소가 바로 이 성분이다. 한때는 심장병과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까지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가장 볼품없는 영양소가 아닐까 싶다. 대규모 임상 실험을 한 결과, 앞서 이야기했던 어떤 효과도 의미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더욱이 2005년의 한 연구에서는 비타민E의 과다복용이 울혈성심부전증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뒤따랐다. 또한, 물에 녹지 않는 지용성 비타민인 탓에 쉽게 배설되지 못하고 체내에 축적되는 경향도 있어서 비타민E의 복용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 아래 더 이상 복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비타민의 여전한 인기, 그리고 뒤에 숨은 진실

비타민의 최신 연구를 접한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다. 의료나 의약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분이 아니라면 누구나 조금은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최근의 학계 동향은 비타민의 효용성이 그동안 지나치게 과대 포장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서는 비타민의 인기가 수그러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의미에서의 검열이 한몫을 한다. 연구실에서 생산된 연구 결과가 대중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유통 경로와 자본이 필요하다. 이때 제약회사에 의해 간접적인 검열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비타민의 효능에 대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철 지난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홍보한다. 이에 반해 비타민의 효능을 부정으로 다룬 최근 연구 결과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몇몇 홈페이지나 영향력이 적은 소비자단체를 통해서만 겨우 홍보가 이뤄진다.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이미 어긋나버린 형평성은 대중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대중 안에서 그 정보들이 또다시 재생산되며 과대평가 되는 악순환이 이루지는 것이다. 

 이는 비단 비타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여러 건강기능식품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광고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혜안을 소비자인 우리가 가져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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