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3. 05:59ㆍ잡담...그 속의 진심/의사가 본 병원이야기
본 사진저작권은 한겨례신문에 있으며,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오늘은 종합병원 탐구생활편이예요.
날씨가 추워지더니,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일주일째 동네의원에 다니고 있는데, 별 차도가 없어요.
아무래도 종합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왜냐면 전 소중하니까요.
종합병원 전화예약 센터에 전화를 걸어요.
부담스럽게 친절한 도우미 언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로 들려요.
언니도 참 고생이다 싶어, 수고하신다는 인사를 건네요.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배려심이 깊은 것 같아요.
언니가 예약을 잡아줘요.
O월 O일 오후 2시 5분에 김모모 교수님께 예약이 되었데요.
참 편한 세상이다 싶어요.
이제 정해진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서 진료만 받으면 되니까요.
<진료당일>
오늘은 진료를 받기로 예약한 날이예요.
종합병원은 동네병원처럼 퇴근후에 진료를 볼 수가 없어요.
병원교수님들도 직장 퇴근시간이면 같이 퇴근을 하시니까요.
어쩔 수 없이 월차를 썼어요.
하지만 월차를 다 포기할 순 없어요.
남친하고 헤이리로 출사를 갈려고 남겨두었던 월찬데, 영화라도 한편봐야겠어요.
오전에 볼까하다가 그래도 몸이 아프니, 진료를 본 뒤, 영화를 보기로 해요.
인터넷으로 멀티플랙스 영화관사이트에 들어가 예약을 해요.
영화는 오후 3시30분에 예약을 했어요.
오전엔 간만에 늦잠도 자고, 진료보고, 영화도 보면 나름 괜찮을 하루가 될거 같아요.
<종합병원 외래>
오후 2시정각에 외래에 도착했어요.
예약도 교수님과의 약속이니 늦지 않을려고 조금 서둘렀어요.
난 다시 생각해도 배려심이 끝장이예요.
그런데, 외래 분위기가 어째 이상해요.
2시인데 아직 1시 40분 예약자가 진료 전인 모양이예요.
진료가 지연되나봐요.
1시 40분 예약자가 한 성깔해요.
외래 간호사들에게 예약 시간이 20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이냐며 따지기 시작했어요.
나도 사실, 영화시간 때문에 조금 마음이 급했는데 속으로 다행이다 싶어요.
덕분에 손 안대고 코 풀게 생겼어요. ^^;;
곧 그 분이 진료를 보러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분 진료실에 들어가더니, 감감 무소식이예요.
현재 시각 2시 10분
예약자 명단을 보니, 5분간격으로 예약자가 있어요.
그 분말고도, 제가 진료보기전에 3명의 대기자(45분,50분,55분 예약자)가 더 있어요.
다행히 2시 정각 예약자는 오지 않은 모양이예요.
그래도 불안해지기 시작해요.
새로산 명품 토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영화예약시간까지 타임테이블을 계산해봐요.
그 때 40분 예약자가 진료를 끝내고 나와요.
벌써 2시 20분이예요.
젠장!!! 이런식으로 가다간 영화표만 날리게 생겼어요.
이럴꺼면, 지키지도 못할 예약은 왜 잡아주나 싶어요.
예약시스템이 없었으면 영화도 예약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게 왠일!!
뒤에 예약자 3명은 진료보는데 1,2분밖에 걸리지 않아요.
5분만에 3명이 모두 진료를 끝냈어요.
대박이예요. 다행히 영화표는 사수할 수있겠다 싶어요.
진료가 시작됐어요. 교수님도 서두르는 눈치예요.
하지만 전 서두르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저도 남들때문에 기다릴만큼 기다렸고, 저는 누구보다도 소중하니까요.
진료를 다보고 처방을 받았어요.
다행히 서두르면 영화시간에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왠지 종합병원 예약시스템이 여러모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여기서 잠깐,, 진료하는 교수님 탐구생활이예요..>
오늘도 진료시간에 쫒겨 정신이 없어요.
오전 외래는 원래 12시반까진데, 진료가 늦어져 1시까지 진료를 했어요.
구내식당으로 뛰어가 10분만에 점심식사를 해결했어요.
그래야 커피한잔이라도 느긋하게 마시고(10분), 양치한 다음(5분) 오후 진료를 시작할 수 있어요.
1시반에 오후진료가 시작되었어요.
시작하자마자 초진환자예요.
매달마다 경과보러 오는 재진환자들은 진료시간이 적게 들지만,
초진환자는 그렇지 않아요. 일일이 과거력이랑 확인해야하고, 문진이랑 진찰하다보면, 15분도 부족할 때가 많아요.
벌써 두번째 예약자(35분예약자)는 진료가 10분 늦어지고 있어요.
이럴수가! 오늘은 진료일진이 정말 안좋은 날이예요.
두번재 예약자도 초진환자예요. 더욱이 수술을 상담하러온 환자예요.
수술 일정까지 상의하다보니, 시간이 자꾸만 흘러가요.
그 때 진료실 밖에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아무래도 다음 예약환자분이 불만을 터트린 모양이예요.
그럴만도 해요. 앞에 환자를 보면서도 마음은 밖에 가 있어요.
서둘러 진료를 끝내고 다음 환자를 만나요.
나에게까지 화를 낼까봐 환자가 바뀌는 동안, 불안하기까지 해요.
하지만, 다행히 그렇진 않아요.
환자도 내 탓이 아니라는 건 아는 눈치예요.
나도 예약 환자를 10분이나, 15분 간격으로 잡고 싶어요.
그러면 지금보단 훨씬 마음 편하게 진료볼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병원장님 눈치를 안 볼 수 없어요.
어쨌거나, 종합병원의사도 고용주 밑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니까요.
3번째 환자가 나가고, 그다음 환자들은 내리 재진환자들이예요.
역시 인생 아예 죽으라는 법은 없어요.
이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좀 서둘러야해요.
그래야 밀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어요.
재진환자 세 분을 진료하면서 그래도 시간을 많이 단축했어요.
이런 시간까지 모두 감안해서 예약시스템이 돌아가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한 마음이예요..ㅠ.ㅠ
어떻게들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종합병원의 예약시스템은 5분간격 또는 그 이하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환자분들에게 인기가 높을수록 어쩔 수없이 예약간격이 줄어들게 되죠. 하지만, 종합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1차 의료기관에서 더 정밀한 진찰이 필요하다 생각되어 전원되어온 환자들입니다. 당연히 시간에 구애없는 세밀한 진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병원예약시스템.. 처음 시작은 환자분들에게 좀 더 나은 편의를 제공하고자 시작된 방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여러 폐단이 뒤따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선, 환자분들은 타 기관에 비해 병원 예약제에서 훨씬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예약시간입니다. 환자분들의 불만은 오히려 당연하다 싶습니다. 병원으로부터 진료 예정시간을 약속받았으니, 그 시간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불만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여기에 더해 의사입장에서도 현 종합병원의 예약제는 불편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앞서 탐구생활에서 살펴보았듯이, 진료실 밖에 상황을 완전히 무시하고 진료할 수는 없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예를 들면, 시간당 예약 환자는 4명정도로만 한정하고(정시, 15분, 30분, 45분에 각각 한명씩), 이후 예약자부터는 시간당 배정을 하는 건 어떨까요? 오전10시부터 11시까지 진료가능환자 5명..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전체 예약가능자수는 어쩔수 없이 줄어들 것입니다. 또한, 예약자분들 중 절반이상은 정확한 예약시간을 받지 못하므로, 불편해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예약 상담시부터 병원 예약시스템의 한계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진행된다면, 오히려 장점이 크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생각해 본 이 대안이 정답이라는 건 아닙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더 좋은 방법을 모색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포스팅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글에 깜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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