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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그 속의 진심

인공지능이 과연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다.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해 얼굴이나 구별해주던 시대는 벌써 어제의 일이다. 
이제는 컴퓨터가 병도 찾아주고,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IBM에서 개발한 왓슨 헬스케어 이야기다. 
이것 때문에 의사가 필요 없어질 거라는 예측도 들린다. 
그래선지 무조건 왓슨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무인 자동차를 반길 운전기사는 없지 않겠나.


얼마 전 모 학회에서 왓슨을 체험하고 온 동료 교수도 
환자의 병력과 임상 증상, 모든 검사 자료를 입력하니 환자에게 가능한 여러 질환이 확률 순으로 정리되어 나오더라며, 이제 의사노롯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왓슨이 의사를 대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의사면허를 딴 직후부터 교수가 된 지금까지 내 실력은 늘 확률이 낮은 정답(정확한 진단)을 찾으며 키워왔기 때문이다.


단순 감기 같은 환자에게 느닷없이 입원을 권하고 CT를 처방하는 경우가 있다.
뭔가 싸한(?) 느낌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셋 중 하나는 경부 농양이 발견된다.
가장 확률이 높은 감기에만 초점을 맞춰 치료를 진행했다면 낭패를 봤을 케이스다.
나는 이걸 제자들에게 ‘전문의의 촉’이라고 운을 띄운다.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증상도 가능성 있는 질환을 최소 세 개는 떠올려 보아야 한다고 내가 늘 강조하는 이유다.

실제로 초짜 의사 시절 오진의 대부분은 왓슨처럼 가장 확률이 높은 질환에 집중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미드 속의 닥터 하우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가장 확률이 낮은 질환도 놓치지 않아야 실력 있는 의사다. 이런 면에서 왓슨은 초짜 의사 수준을 벗어나기 힘든 태생적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왓슨을 폄훼하자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왓슨에 대해 무척 큰 기대를 가지고 우리 병원에도 서둘러 도입되기를 희망한다.
왓슨이 인턴과 전공의를 포함해 교수들의 오진율을 현저히 낮추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진은 늘 ‘평범한 증상, 드문 질환’의 조합에서 발생한다.

5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환자와 인사도 나누고 의무기록도 작성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사실상 진단이라는 과정은 수초 사이에 이루어진다. 이때 드물더라도 가능성 있는 모든 질환을 제안해주는 왓슨이 함께한다면 이건 정말 멋지지 않나.


왓슨 : “이 환자에게 가장 확률이 높은 진단은 A(82%)입니다. 하지만 B(11%), C(4%), D(3%) 질환도 가능하니 염두에 두세요.”


기껏해야 B까지 떠올리기에도 벅찬 의사들에게 C와 D 질환에 대해 넌지시 물어봐 주는 왓슨은 전공의 시절 뻔해 보이는(?) 환자 회진을 돌며, C 질환 일지도 모르니 이 검사는 추가로 진행해 보라셨던 주임교수님의 오마주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동료 의사들에게 왓슨을 경계하고 배척할 일이 아니라, 왓슨이 더 똑똑해질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언컨대, 왓슨은 의사에게 최고의 선물이지, 경쟁 상대가 아니다.







해당 글은 청년의사FBI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