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은 무엇일까.

남에게 사기를 당했다면, 틀림없이 억울한 일의 상위 순서를 차지할 거다.

예를 들어보자. 500만 원 가격의 상품을 내가 고민 끝에 500만 원의 값어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제 돈을 주고 구매했다면, 이 과정에서 억울할 사람은 없다. 단, 다른 사람이 이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동일한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에서 말이다.


자신이 상품을 정가에 구매하고 이 상품의 품질에 만족했더라도, 타인이 동일한 물건을 (이를테면) 300만 원의 가격에 구매했다면, 500만 원에 구매한 사람은 마치 자신이 200만 원 이상의 손해를 본 듯한 억울한 심정을 경험한다. 이게 바로 상대성 원리다. (아인슈타인이 이것까지 고려했는지는 모르지만.)


몇 달 전 나에게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가 갑자기 병원에 나타나 수술비용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했다. 내가 성형 비용으로 000 금액을 설명했는데, 막상 퇴원하면서 받은 영수증을 살펴보니, 성형에 따른 수술 비용이 000보다 50만 원 많은 금액이었다는 거다. (이런 중차대한 사실을 몇 달이 지난 지금, 왜 이제야 이의제기하는지는 알 수 없다.) 내 메모장에는 틀림없이 처음부터 000+50만 원의 금액을 설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심지어 그 금액에 대한 세금은 별도 부담임을 따로 설명한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환자는 처음에는 50만 원 적은 금액으로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백 명의 환자에게 수술비용에 대해 직접 설명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나는 만약, 이 환자가 계속 동일한 주장을 한다면, 법정까지라도 가볼 생각이다. 나에게는 이번 일이 무척 억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메모장의 기록 또한 분명히 남아있다. 내가 만약 수술 전에 설명한 비용과 수술 후에 원무팀에서 청구한 비용이 차이가 크게 났다면, 지금까지 이런 일이 처음일 리 없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문득 든다. 그 환자는 어떤 이유에서건 나에게 억울한 심정이 있지는 않았을까 말이다. 이런 가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게 코성형을 받은 또 다른 환자가 있는데, 그 환자가 자신이 낸 비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수술을 받았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환자가 억울한 심정을 느낀 건 아닌지 말이다. 성형수술에 대한 비용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비염 수술이나 비중격교정술 등의 급여 수술은 심평원에서 정한 가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수술의 난이도에 따라 가격을 나눠 받는다. 간단한 코끝성형은 000만 원, 보형물이 들어가면 000 + 보형물 비용, 코가 많이 비틀어져서 절골술이 필요하면 000+알파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오해가 있었을 수 있다. (수술하는 의사에 따라, 이런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자, 첫 코성형은 000금액, 두 번째 코성형은 000금액으로 구분해서 비용을 청구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건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일단 감정적 문제로 치닫는 게 문제다. 사과를 하고 싶어도 나 또한 억울한 감정이 있으니, 쉽지 않다. 물론, 환자의 입장도 제 3자가 들어봐야 할 거다. 이번 일이 어떻게 해결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서로 오해를 잘 해결하고, 나쁜 감정 없이 앞으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 남을 뿐이다.



추) 환자는 간혹 자신이 병원에서 호갱님이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맞다. 당연하다. 병원의 시스템을 일반인이 100%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내 가족이 타 병원에 입원해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일반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인도 환자들에게 억울한 심정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점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일이 세심히 살펴보면 늘 그러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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