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이란 잘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다.

2011. 10. 24. 06:00잡담...그 속의 진심

D-1 Suneung
D-1 Suneung by Jens-Olaf 저작자 표시비영리




, 수능이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모두 자기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겠지.

누군가는 바로 취업을 생각하고 있겠고.

, 누군가는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고 어떤 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할 테고.

 

그때쯤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이렇다.

“고민할 게 뭐가 있어. 성적 따라가면 되는데….”

 

슬프게도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대에 진학하고 싶어도 성적이 돼야 가능한 거고. 의대나 치대를 진학하고 싶어도 성적이 먼저다. 그러니 자기 성적에 맞춰 가능한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고르면 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심해야 할 부비트랩이 있다. 성적은 상한선만을 제시할 뿐 하한선을 정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무슨 이야기냐. 성적이 부족해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대학이나 과는 있어도 성적이 남아서 못 가는 경우는 없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막상 부족한 성적으로 갖고 싶은 것을 놓치고 나면, 누구나 본전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성적이 상위 20%인데 50% 대 친구들이 진학하는 과를 고르는 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는 거고. 그래서 신기하게도 원서를 접수할 시점이 되면, 학생 대부분이 결국에는 성적순으로 줄을 선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그해 입학이 가장 어려운 과로, 그냥 상위권 학생들은 인기 차순위인 과로… ㅠ.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성적하고 상관없이 정말 하고 싶은 과로 진학하라는 뻔한 이야기 하려고??”

 

-글쎄. 적성이야기를 해보려는 건 맞다. 하지만, 하고 싶은 과? 그게 뭔지 알기나 하나? 적어도 나는 그때 몰랐다. 내가 뭐가 적성인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딴 뒤에 전공과를 정할 때도 그랬다. 그냥 우리 사이에서 인기있는 과를 골랐던 거지. 국민학교라 불리던 옛 학교 앞 문방구에서뽑기’하듯 대충 골랐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둘 중 하나는 내 적성에 맞더라는 거고.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거다. 이 글을 혹시 수험생님들이 읽는다면, 나처럼 대충 뽑지 말고, 조금이라도 확률 높은 게임을 하시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고스톱 한 판을 쳐도 내가 go’를 할 때는 다음 턴에 상대방이 점수가 날 확률 정도는 계산하면서 칠 줄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먼저, 하고 싶은 일보다도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겠다. 음치가 가수를 꿈꿔봤자, 이승철이나 윤종신한테 쓴소리 듣고 주저앉을 공산이 크니까 말이지.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느냐는 거다. 이게 키뽀인트다.

 

영화감독이나 방송PD라는 직업을 예로 들어보자.  
영상매체를 좋아하고 창조적인 일에 대한 끝없는 도전의식은 이쪽 계통 직업군의 기본 소양이니 차치하도록 하자. 대신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너 평생 정해진 퇴근시간 없이 일하고, 가족들과 따로 살 수 있어?’


Ice-T, Belzer and director by gilly you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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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직업 가진 사람들은 정말 낮밤 구분없이 일하니까. 굳이 새벽 씬을 찍는 게 아니라도 촬영이 길어지면 날 새는 건 기본이고. 퇴근 후 가족들과 보내는 오붓한 시간은 드라마 속 장면이지 자신과는 평생 무관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지. 그러니 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면 이런 직업은 적어도 피해야 한다는 거고.

 


정치인에 대해서도 이런 접근이 가능하다
.
여러 경로와 다양한 명분으로 정계에 입문하지만, 정치인 모두 각자의 비전을 가지고 사회를 바꾸려 노력한다는 공통점은 있거든. 그러자면 사람들 앞에서 편히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하고.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욕을 먹고도 아무렇지 않게 버틸 수 있는 뻔뻔함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걸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는정치적 맷집’이라고도 표현했다.)

Korea's new President, 이명박
Korea's new President, 이명박 by hojusaram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 대통령이면서 가장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는 정치인 또한 대통령인 걸 생각하면 이 맷집
, 아주 중요하거든. 안티 댓글 몇 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절대 정치하면 안 돼. 세상 바꾸려다, 자살하기 십상이니까.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은 어떨까
.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작가로서의 자질을 어느 정도 타고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적성을 이야기하려면 자질에 더해 대다수 작가가 겪게 되는 빈곤한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도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지.

Donald Keene at home: Tokyo, 2002
Donald Keene at home: Tokyo, 2002 by aurelio.asiai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영어권이 아닌 한글로 글을 쓰는 작가들은 소위 대박이 나지 않는 이상 안타깝게도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면하기 어려우니까.

 



끝으로
, 요리사라는 직업의 적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요리사도 창조적이고 멋진 직업이지. 하지만, 요리사로 대성해서 오성급 호텔쉐프’가 된다 해도 남들 밥 먹는 시간에 평생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아마추어 요리사를 찾아라
세계 최고 아마추어 요리사를 찾아라 by LGEPR 저작자 표시
 

 

 

오늘의 결론

그래서 적성은 캐러멜 마끼아또에 들어 있는 칼로리 같다는 생각이다. 캐러멜 마끼아또를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그 속의 칼로리를 감당할 수 있느냐가 주문을 결정하듯 직업을 고를 땐 그 일을 좋아하고 잘하느냐를 포함해서 그 일에 포함된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느냐도 고려해야 하니 말이다. 

 

 

P.S) 수험생 여러분~ 모두 화이팅입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너무 열심히 하려고 의욕만 앞서다 보면 오히려 중압감에 못 이겨 속상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답니다. 그냥 편하게 마무리하세요. 몸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면 홈런을 칠 수 없으니까요. ^_____^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건강할 그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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