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7. 07:00ㆍ잡담...그 속의 진심
얼마 전 수능을 본 학생 한 명이 제 블로그 방명록에 사연을 남겼습니다.
(공개된 장소에 남긴 사연이어서
전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수능
본 학생입니다.
고3은 아니고요, 재수해서 하위권 의대를 갔다가 이번에 또 반수까지 더해서
그나마 하위권
의대 이상급 의대는 갈 성적이 나온 학생이에요.
외가친가 중에서도
의대 간 사람은 저밖에 없어서
갔다고 하니까
다들 잘했다고 하고 칭찬 듣고 그랬어요;
그런데 저도
막상 의대를 가니 중소병원 경영악화 소식이 하도 자주 보여서
의대 가는
게 정말 맞는 건가 회의감이 들었는데 실상이 그렇게 안 좋은가요?;;
제가 고3 때 막 졸업해서 의대 갈 성적이 안 나왔을 때,
한국과학기술인
연합회 사이트에서 진학게시판을 돌아다녀 보니
모든 공대의대비교글에서
의대가 훨씬 좋다고 했었거든요;;
OO대 의대는
학교가 너무 불안정해서 바꾸게 됐는데
앞으로 16~17년 동안 인생 절반을 공부로 보내는 동안에
의사 수가 2배 불어나면 얼마나 더 망한다는 건가 걱정되네요.
가서 피부과안과성형외과를
향해 노력하려 했는데 그게 안된다면 또 막막할 거 같고;
어떤 분은 USMLE를 준비하신다는데 그것도 비용, 시간이 정말 많이 들어갈
것 같네요;
이런 걸 준비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쁘단 말인데.
깜신님은 앞으로
계속 의사전망이 나빠진다고 보시는가요??
혹시 그 사이에
건강보험 수가가 정상적으로 조정돼서 이런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나요?
아 그리고
너무 개인적인 질문이어서 죄송하지만
자식분을 의대를 안 보내신다면 무슨 과를 보내실 생각이신가요??^^;혹시 치대인가요??’
지금부터 이 글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이 학생뿐 아니라, 의대를 지망하는 다른 여러 학생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적습니다.
첫 번째 질문: 의사 전망이 계속 나빠질 거라고 보시나요?
답변: 수입에 대한 전망만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당연히 나빠질 겁니다. 해마다
의사 수가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새로운 치킨점이 동네에 들어서면 예전 치킨집 매상이 주는 건 당연하겠죠. 의사도 계속 수가 늘어나고 있으니까, 수입에 대한 전망이 나빠지는
건 당연합니다. 지금도 재정난에 힘들어하는 의원들이 많고, 실제로
부도가 나서 폐업하는 의원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좀 더 가속화될 거라고 봅니다.
두 번째 질문: 건강보험 수가가 정상적으로 조정돼서 이런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나요?
답변: 불가능해 보입니다. 건강보험 수가가 정상화된다는 건 같은 의료 행위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수가를 인상해주는 걸 말합니다. 하지만, 공단에서 수가 인상을 안 하는 것은 오히려 못하고 있다는 편이 맞습니다. 건강보험공단 재정이 엉망인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닙니다. 결국, 수가 정상화는 의료 보험료 인상이 필수적인데,세금 인상은 국민적 저항이 있고 장기적인 대책보다는 일시적 여론에 민감한 정치 속성 상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포기하고 사는 게 마음 편합니다.
‘상황이 이렇습니다. 그러니 수입에 대한 기대로 의대를 진학하려는 거라면 마음을 접는 게 정답입니다.’
세 번째 질문: 자식분을 의대에 안 보내신다면 무슨 과에 보낼 생각인가요?
답변: 이야기에 앞서 제 자식의 진로를 제가 미리 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결국 제 인생은
제 것이고, 자식들 인생은 자기들 것이죠.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틀렸다고 봅니다.
물론, 질문한 학생도 이런 의도의 질문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약간은 질문을 바꿔서 답변해볼까 합니다.
‘진심으로 상담해주신다면, 어떤 과가 가장 전망이 있어 보이나요?’ 정도로 말이죠.
수입에 대한
전망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어떤 과도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대학에
이미 과가 신설되었다는 건, 이미 블루오션에서 레드오션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과가 문을 닫지 않는 이상, 매해 동일 자격의 경쟁자들이 배출될
거니까 말이죠. 한참 잘 나갔던, 변호사나 한의사의 전망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제한된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전문가 수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입에 대한
전망만을 이야기한다면 대학진학은 굳이 필요 없습니다. 매정하고 성의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선진국들의 대학진학률이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낮을 걸 보면 절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국내 사정상
대학입시가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지금 학생이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네요. 무작정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권하는 과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지원할
과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과를 정하는 기준에서 자신의 적성과 흥미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적성만 맞는다면, 지금 의대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본주의의 비굴한 특성상
기대 수익이 떨어지면, 노동량도 상대적으로 감소합니다. 의사들의
수익 전망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전공의들의 복지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영하죠. (여전히 전공의
과정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십 년 전에 비하면 거의 상전 모시는 수준입니다.) 결국, 전문의까지의 과정은 어떤 식으로든 점점 더 편해질 거라
예상합니다. 그러니 의사가 적성에만 맞는다면 지금이 적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란 환자의 고름을 짜내고 살 썩는 냄새를 맡으며 보람을
찾아야 하는 직업입니다. 적성이 맞지 않다면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려면 ‘돈’, 물론 중요합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입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절대 명제입니다. 물론, 지금 이런 이야기가 학생 가슴에 가 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성인으로서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성립된 시점일 테니까요. 그래서 더 긴 이야기를 하기보단 두 권의 책을 권하는 것으로 답변을 끝내려 합니다. 제 자식에게도 꼭 읽힐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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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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