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그 속의 진심

의사가 말하는 환자보호자와 의형제 맺은 사연


안녕하세요. 깜신입니다.
벌써 2010년 새해가 밝았네요. 올해 이 글이 첫 포스팅인데, 무얼 쓸까 고민고민하다.
건강 얘긴 하루 접고,
제가 너무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형님 한분을 소개해드리기로 마음 먹었답니다.
지난 한해 제 블로그에 관심가져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구요.
새해 뜻하신 모든 일 이루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드립니다.


겨울 방학이 되면, 종합병원 이비인후과엔 편도선절제술을 받는 환자들로 항상 북적거립니다. 응급한 수술은 아니다보니, 다들 방학즈음으로 수술을 계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들에게 겨울방학은 끝없고 쉼없는 고행과도 같은 계절입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마른 침을 삼키며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고 있었습니다. 환자분 가족은 남편과 아빠 꼭 닮은 아들 녀석 하나, 이렇게 세 식구로 단출했습니다. 화목한 가정에 가끔 속상한 일이 생기는 건 대개는  환자분 건강문제라고 했습니다. 갑상선항진증으로 계속 치료받아오고 있는데다, 몸이 약해서 감기만 걸려도 남보다 심하게 앓고 고생을 했다더군요. 결국 몇 달전 우리 대학병원에서 만성편도선염을 진단받고 편도선절제술을 받기로 한겁니다. 건강상 과거력이 많다보니, 수술을 위한 준비과정도 남보다 번거로웠지만, 그래도 전신마취가 가능한 상태라는 결론을 얻게 되어 다행이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입원을 하고 수술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걱정했던 것보다 통증도 크지 않아 주말만 보내고 퇴원할 계획이었죠. 일요일, 그 날 아침까진 그랬습니다.


일이 터진 건 그 날 오후였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기 바로 직전이었죠. 갑자기 환자가 피를 뱉어내기 시작한 거였습니다. 겁이 많은 환자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남편분은 병동스테이션으로 뛰어가 담당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콜을 받고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몇 명이 부리나케 뛰어갔습니다. 수술부위 출혈이었습니다. 수술 전, 편도선수술은 성인의 경우가 출혈가능성이 높다고 누차 설명해주었던 윗 년차 레지던트가 환자를 안심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지혈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다들 수술 후 출혈에 대해 많이 대처해본터라, 일사분란하게 지혈 준비가 이루어지는 모습에 남편분도 조금은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외래 처치실에서 이루어진 지혈처치는 절대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환자분이 워낙 구역반사가 심한 편이어서 국소마취로 하는 지혈처치가 너무 어려웠던 겁니다. 수술부위는 오른쪽 편도 혀끝 아래쪽인데, 상처부위 근처에 닿기도 전에 환자는 구역질이 나서 견디질 못했습니다. 구역질 할 때마다, 붉은 핏덩이가 한주먹씩 뱉어졌습니다. 이미 환자복은 온통 피칠갑을 했고 처치실 바닥은 피가 흥건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분이 드디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니, 출혈량은 그 배가 되었습니다. 남편분께선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피는 처음 봤다고 하시더군요. 이거 큰일이구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쯤, 환자분이 담당 교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자주 다니시던 환자분은 담당교수님을 무척 좋아하셨거든요. 우리 레지던트 중 한 사람이 교수님께 이미 연락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주말이니 교수님께서도 댁에서 나오시려면 당연히 몇 시간은 걸린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출혈은 그런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드세져만 갔습니다. 정말 삽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환자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한 겁니다. 과다출혈로 인한 실신소견이 나타나자, 레지던트인 우리들 사이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땐, 피를 직접 뱉어내니 큰 문제가 없지만, 의식을 잃으면, 출혈된 피가 기도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호자에게 점점 무서운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 삽관을 해야 할 거 같다며 동의서를 가지고 왔지만, 동의서엔 기도삽관 뿐 아니라 수혈 및 기도절개술, 이에 더해 사망가능성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남편분이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동안, 좀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내과 레지던트가 형수님 목에 큰 바늘 주사기로 혈관을 찾고 있었습니다. 수혈을 하려면 팔에 잡은 작은 혈관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출혈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몇 시간전만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나 많은 일들이 마치 거대한 쓰나미처럼 그 날 그곳을 강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레지턴트들 사이에선 환자의 상태가 너무 위급해서 전신마취 하에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전 그 때까지만 해도, 편도선절제술 후 여러차례의 출혈 환자는 경험하였지만, 응급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출혈은 사실 처음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남편분에게 설명드렸을 때, 수술이든 뭐든 괜찮으니 어서 저 피만 멈추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수님이 타 지역에 출타중이라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빨리 돌아오셔도 3-4시간은 더 걸릴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겁이 버럭 났습니다.우리 레지던트들도 모두 난감한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환자분을 믿고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해보겠노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에 남편분은 처음으로 얼굴이 벌개지시며 주먹을 단단히 쥐셨습니다. 바라보고 있던 저도 겁이 버럭 났습니다. 수술동의서에 사망가능성까지 이야기하면서 담당교수님이 집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저로서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남편분 목소리는 너무 의외였습니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선생님들이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오지 못하신다는 사실에 환자분은 수술실로 급히 옮겨지는 와중에도 죽기 전에 아들 한 번 더 보게 해달라며 남편분을 졸랐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수술은 시작되었습니다. 첫 수술은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지혈수술은 1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정말 혀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시간을, 아들녀석과 함께 남편분은 보호자대기실에서 그렇게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났습니다. 다행히 출혈은 멈추었습니다. 그렇게 무섭고 길기만 했던 그 날 저녁은 제 기억 속에 이렇게 남았습니다.


그 후로 며칠의 시간이 흘렀고, 출혈은 다시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환자분이 퇴원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 날이 제가 그 남편분을 처음 형님이라고 부르게 된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당시 그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 레지던트였고. 형님은 셀 수 없이 많은 환자 보호자 중 한 분이셨습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판단력을 잃지 않고, 레지던트에게 곧바로 신뢰를 주셨던 형님과 교수님도 도착하기 전에 만약 응급수술 중 사고라도 나면 집도를 맡은 본인에게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수술을 시작한 레지던트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 날 우리는 형수님을 영원히 잃을지도 몰랐을 겁니다. 그 날 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간의 신뢰가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함을 가슴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 형님은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한 분이 되셨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땐 함께 기뻐해 주시고 힘든 일이 있을 땐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도와주시는 형님이 계셔서 이 동생은 항상 너무 든든합니다. 

 며칠 전에도 형님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는 상처가 많이 아문 그 날의 이야기도 나누고, 최근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의사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일이 행복하고 보람된 건, 사람 안의 신뢰를 확인해가는 긴 여정의 한 일부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올 한해도 많은 분들과 신뢰 속에서 나눔을 함께 하는 그런 2010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손가락을 누르면 추천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추천과 격려로 2009년 한해가 풍성했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Daum에서 구독하길 원하시는분은 여기를 클릭 ->Daum ID로 구독+해서 편히 보세요

한RSS에서 구독하길 원하시는 분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