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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건강프로젝트/튼튼 육아가이드

우리 아이를 위한 음악 조기 교육의 허와 실



YER BLUES by boston_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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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음악 조기 교육, 정말 해야 할까?


 굳이 열성적인 부모가 아니더라도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의 음악 공부에 관심이 많습니다. 꼭 음악가로 키우고자 하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그 이유는 음악 공부 또한 적절한 시기가 있고, 그 시기를 놓치면 효과적인 음감 습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게을러서 아이에게 음감 습득에 효과적인 때를 놓치게 된다면, 아이에게 미안한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엄마들은 아직 철도 안 든 아이들을 데리고 피아노 학원이나 바이올린 학원을 찾습니다. 하지만, 음악 조기 교육을 한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음악가로 대성하는 건 아니죠. 사실 제가 음악 조기 교육에서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대표적인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여섯 살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대략 6년을 배웠습니다. 사이에 플루트를 1년 넘게 배우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음감이요? 글쎄요. 음치는 아니지만, 어디다 자랑스럽게 내어놓을 정도는 절대 아닙니다. 이런 제가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요. 이제는 제 아이들의 음악 교육을 고민하는 거지요. 그래서 음악 조기 교육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렇다고 굳이 어린 나이에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은 부모의 마음인 거죠. 지금부터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조기 교육’ 과연 정말 필요한가.

 아이들은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또, 동기 유발 자체도 어렵지요. 대화가 수월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기도 하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일주일이면 가르칠 내용을 다섯 살 아이에게 가르치려면 그보다 갑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게는 열 배 이상의 시간이 들기도 하죠. 그렇게 공을 들이고 성취도라도 만족스럽다면 다행이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좀 더 성장한 후에 쉽고 간단히 배울 수 있는 무엇을 서둘러 가르치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이를테면 자전거 같은 거지요. 스무 살에 처음 배우나, 다섯 살부터 단계단계 배워나가 결국 자전거 실력은 마지막에 열심히 탄 사람이 낫다면 어려서부터 고생할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조기교육에 많은 부모가 관심을 두는 건 적절한 시기를 놓침으로써 최종적인 성취도가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음악은 조기 교육이 필요할까요, 그렇지 아닐까요. 우선은 음악 조기 교육의 효과에 대해 검증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할 겁니다. 조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후에 얼마나 음악가의 직업을 가졌는지를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성장 후 절대음감을 습득했는지의 여부를 가지고 음악 조기 교육의 효과를 평가해보고자 했습니다.




절대음감은 무엇일까요.

 절대음감이란 기준이 되는 특정 음을 주지 않은 상태(피아노 건반으로 ‘도’를 들려준다거나 하는 걸 말하죠.)에서 들려주는 음의 정확한 음계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절대음감의 습득 여부를 가지고 음감 교육의 효과를 평가해보려는 까닭은 음감의 최고수준이 절대음감이기 때문입니다. 음감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화상의 목소리를 듣고 상대방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요. 남성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저음역대에 있기 때문에 목소리의 음색만을 듣고도 성별을 예측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정말 낮은 키의 음과 정말 높은 키의 음은 누구나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의 키가 기본 옥타브에 가까워지면 음감이 좋지 않은 사람은 이게 어떤 음계의 음인지 정확히 구별하지 못합니다. 음감이 좋은 사람들이 이때 두각을 나타내는 겁니다. 기본 옥타브 안에서도 들려주는 음이 ‘도’인지 ‘레’인지 심지어 ‘도#‘인지까지도 정확히 짚어내니까요. 그런데 음악가 수준의 음감을 가지려면 그 ‘레’가 진짜 정확한 ‘레’인지 아니면 ‘레’ 언저리의 ‘도#’이나 ‘레#’보다는 ‘레’에 확실히 가까운 소리일 뿐이지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한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슈퍼스타 K’나 ‘위대한 탄생’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 오디션 참가자가 아주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릅니다. 저는 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한 남학생이 떠오르는군요. 그 정도면 ‘동네 가수’ 수준 이상의 노래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이 친구는 ‘통과’일 거라 자신했죠. 그런데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MBC 위대한 탄생 뭐 이러..
MBC 위대한 탄생 뭐 이러.. by euan.k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음이 정확하지를 않아요. 모든 음이 약간씩 어긋나 있군요!”

또 다른, 심사위원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기타 조율한 것 맞죠?! 다음 오디션 때는 기타 조율부터 신경 쓰세요.”


 심사위원들은 기교가 아무리 좋아도 정확한 음을 낼 수 없다면 자질이 없다고 혹평을 했습니다. 음의 배열로 노래를 불러 음악을 표현하는 가수라면 음감이 날 선 칼 같아야 한다는 거지요.


 이렇듯, 음감의 수준은 목소리로 성별을 가늠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해서 기타 조율의 미묘한 어긋남까지도 알아맞힐 수 있는 수준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 위에 있습니다. 그 사이에 속칭 ‘절대음감’이 있고요. 절대음감이란 천재 음악가들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들려지는 음의 음계 정도는 맞출 수 있는 수준을 말합니다. 이 정도도 절대 흔하지는 않고요. 주위에서 찾아봐도 그렇지만, 대략 1,500명당 1명꼴이라고 하니까요. [1] 어쨌거나, 절대음감을 음감의 척도로 쓰기에 좋은 건, 평가가 용이하기 때문인 거고요. 그래서 국제적인 음감과 관련된 많은 연구가 절대음감을 평가 기준으로 활용합니다.


 


아시안 인들의 음감이 좋은 과학적 이유가 있다.

 음감과 관련된 자료를 찾던 중 가장 먼저 제 눈을 끌었던 건 아시아인들의 음감이 통계적으로 비아시안 인들에 비해 월등히 좋다라는 논문이었습니다. 1999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미국의 음악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시안 인과 비아시안 인들 사이에서 절대음감을 소유한 학생의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 비아시아 인인 학생들 2,470명 중에서는 173명이 절대음감 소유자로 7.0%에 해당하는 학생들만이 절대음감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아시안인 학생 237명 중에서는 32.1%에 해당하는 76명의 학생이 절대음감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비아시아인 학생 수에 비해 아시안인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 흠인 데이터이긴 하지만, 32.1% 대 7.0%의 극명한 차이는 그 이유가 무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비록 우리가 서양인들보다 체구가 작은 핸디캡을 가졌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더 훌륭한 음감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일까요? 이 궁금증의 해답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논문이 2006년과 2007년에 연달아 발표되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정신과에서 발표한 논문에는 인종 간의 음감 차이가 어릴 적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아시아인이라고 해도, 어릴 적에 북미에서 생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아시아 인들과 비슷한 수준의 절대음감 소유 분포를 보이더라는 겁니다. [3] 연구자들은 더 나아가 이런 현상을 인종 간의 언어차이에서 차이가 비롯된 것 같다는 결론을 보여줍니다. [4] 아시아인 중에서도 절대음감 습득률이 높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언어를 분석해보면, 다른 언어와는 다르게 음정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거지요. 이를테면 중국어(북방어, 또는 베이징어)에서는 ‘마-ma’라는 단어는 고음으로 발음하면 ‘엄마’를 뜻하지만, 중고음으로 발음할 때는 ‘대마’를 뜻하고 저음으로 발음하면 달리는 ‘말’을 뜻한다는 겁니다. 일본과 대한민국도 음감이 좋은 아시안 인종에 포함되는데요. 중국어 정도는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경상도와 함경도 쪽의 방언에서는) 음정에 따라 다른 의미가 전달되는 단어적 특징이 있다는군요. (저도 미처 몰랐던 사실을 외국 논란을 읽다 알게 되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태어나서 말을 처음 배우는 단계부터 아이가 음감의 차이를 구별해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이 자체가 아이에게 음감 교육의 효과를 띄게 된다는 겁니다. 덕분에 서양인들에 비해 절대음감을 갖게 되기에 유리하다는 거지요. 결국, 아시아인들이 음감이 좋은 이유는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인종의 우수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언어가 서양 언어보다 아이의 음감 발달에 더 훌륭한 과학적 언어라는 의미이니 기분 나쁠 게 없는 이야기입니다.




음감과 어릴 적 환경은 연관성이 무척 큽니다.

 결국, 음감의 획득에 있어서 음악의 조기 교육은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조금 확대해서 해석하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엄마’, ‘아빠’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음감 교육을 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음악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그래서 말을 배우고, 단어를 가르치기 시작할 때 음감 교육도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나뭇잎 색을 ‘녹색’, 도화지 색을 ‘흰색’이라고 명명해서 가르칠 정도의 언어 발달 수준에서 ‘이 음이 ‘도’야, 이 음은 ‘레’고.’ 하는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나이가 만 4세입니다. 음악 교육가들은 적어도 만 5세 전에는 시작해야 아이의 음감 발달에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600명 이상의 음악가를 대상으로 음악 교육을 시작한 나이를 조사해보니, 4세 이전에 시작한 음악가들은 40%에서 절대음감을 소유했던 반면, 9세 이후에 시작한 음악가들은 고작 3%에서만이 절대음감을 소유하고 있더라는 거지요. [5, 6] 또, 음악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절대음감을 소유한 학생들의 음악 교육 시작 평균 나이는 5.4세였고요. 절대음감이 없는 학생들의 음악 교육 평균 시작 나이는 7.9세더라는 데이터도 있습니다. [2] 결국, 음감과 어릴 적 환경은 철저히 연관되어 있고, 절대음감을 갖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만 5세 이전에 음악 교육을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거지요.




절대음감, 조기교육만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더 궁금한 건, 언제부터 가르칠 거냐 보다 이렇게 가르쳤을 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 하는 부분일 겁니다.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조기 교육만으로 절대음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지나친 해석입니다. 음감 발달에 환경적인 요소가 무척 중요하지만, 유전적인 부분을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음감의 유전 방식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은 음감 또한, 틀림없이 유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겁니다. 형제 중 절대음감을 가진 아이가 있을 때, 나머지 형제가 절대음감을 갖고 태어날 확률은 14.1%입니다. 절대음감이 없는 아이의 형제에서 절대음감이 있는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1.7%인 걸 생각하면, 8배가 넘는 확률입니다. [2] 유전적으로 음감에 대한 소양이 없는 아이라면, 조기 교육을 한다 해도 효과가 기대 이하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음악가 집안에 음악가가 나오는 법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엄마, 아빠가 모두 음감이 좋은 가족이라면 아이에게 조기 교육을 하는 건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음감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라도 음감을 좋게 해주고자 서두르는 음악 교육이라면 정말 꼭 필요할지 의문스럽습니다. 소질이 없는 아이에게 너무 이른 음악 교육은 온전히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괜한 부모의 욕심으로 즐거워야 할 음악에 흥미마저 잃게 된다면, 오히려 아이 인생에 손해가 아닐까요.



그럼, 제 딸은 어떻게 키우느냐고요?

 만 4살부터 바이올린을 일주일에 두 타임, 삼십 분씩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와 처가 바빠서 방문해서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있고요. 진도나 아이의 성취도는 신경 쓰려 하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음감을 키워줄 목적으로 시작한 레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친구 중에 바이올린을 배우는 친구가 부러웠던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아이가 조르더군요. 그래서 시작한 레슨일 뿐입니다. 언제까지 가르칠 거냐고요? 저야 모르죠. 딸아이가 싫증 나서 이제는 그만 배우고 싶다고 할 때까지만 가르칠 생각이니까요. 대신 제가 피아노를 칠 줄 알아, 주말에는 딸아이와 함께 동요를 부르며 함께 놀고 있습니다. 음악이란 즐거운 놀이라는 걸, 피곤하거나 지칠 때에는 힘이 되어주는 위로라는 걸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음감 교육을 위해서는 피아노를 이용한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7] 건반마다 음이 정해져 있는 피아노보다는 연주자가 직접 음을 제대로 짚어야 하는 바이올린이 음감 교육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음에 대한 기억이 학습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정확한 음에 대한 노출은 오히려 음감 발달을 저해한다는 겁니다. 물론, 피아노로 음감 교육을 시작하는 경우 ‘도#‘, ‘레#’과 같은 검은 건반에 해당하는 음감 발달이 더디다는 의견이 있긴 합니다.




씨앗글 목록
1. Profita, J. and T.G. Bidder, Perfect pitch. Am J Med Genet, 1988. 29(4): p. 763-71.

2. Gregersen, P.K., et al., Absolute pitch: prevalence, ethnic variation, and estimation of the genetic component. Am J Hum Genet, 1999. 65(3): p. 911-3.

3. Henthorn, T. and D. Deutsch, Ethnicity versus early environment: comment on 'Early childhood music education and predisposition to absolute pitch: teasing apart genes and environment' by Peter K. Gregersen, Elena Kowalsky, Nina Kohn, and Elizabeth West Marvin [2000]. Am J Med Genet A, 2007. 143(1): p. 102-3; author reply 104-5.

4. Deutsch, D., The enigma of absolute pitch. Acoustics Today, 2006. 2: p. 11-19.

5. Baharloo, S., et al., Absolute pitch: an approach for identification of genetic and nongenetic components. Am J Hum Genet, 1998. 62(2): p. 224-31.

6. Trainor, L.J., Are there critical periods for musical development? Dev Psychobiol, 2005. 46(3): p. 262-78.

7. Vanzella, P. and E.G. Schellenberg, Absolute pitch: effects of timbre on note-naming ability. PLoS One, 2010. 5(11): p. e15449.